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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분단하고있는 것은 가짜 뉴스 일까?

출처 : http://jp.techcrunch.com/2018/02/20/2018-02-18-fake-news-is-not-the-real-problem/


모든 인터넷의 탓이라고한다. 영국의 EU 탈퇴 파 대 잔류 파 미국 공화당 대 민주당 등 대립하는 층은 서로 다른 종류의 현실에 살고 있으며, 상대 진영을 향해 모든 기회를 포착 "가짜 뉴스!"고 외치고있다. 미디어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분열, Facebook과 Google이 압도적 인 지위를 차지하는 따라 사용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뉴스 및 검색 결과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라는 필터 버블 현상 도 발생하고있다. 현실에 대한 콘세사스이 손실되었다 등등 ....

하지만 나는 이번 영화 ' 펜타곤 페이퍼 / 최고 기밀 문서 '를보고 처음부터 우리는 현실의 본연의 자세에 대한 합의 등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느꼈다. 우리가 합의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은, 실은 강요 한 것이었다. 언론과 정부는 항상 우리 앞에있어 대중에게 제공되어야 뉴스는 어떤 것과 어느 것인가에 대해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 (노암 촘스키의 '매뉴팩처링 콘센트 매스 미디어의 정치 경제학' 도 도움이 될). 현재 윤리적 인 위기는 정부가 미디어에서 거짓말을했던 것을 나타내지 만, 사실 그것은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

먼 옛날의 역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라크 정권은 베트남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지만 백악관은 (게다가 영국 정부도) 새빨간 거짓말을 다해 미디어도 그것을 승인하고 확산됐다. 이라크를 둘러싼 전쟁은 수십만의 목숨을 희생하고 수조 달러의 돈이 투입되었다. 도널드 트럼프는수록 싫어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대통령 모르지만, 트럼프 정부는 (지금까지) 리처드 닉슨과 조지 W. 부시 정권과 같은 전쟁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차이점도있다. 전통적인 저널리즘은 자신들의 작품은 미국 시민에 대한 판단의 재료가되는 증거를 제공한다는 것이 은밀한 신조였다. 시민들은 이에 기초하여 각각의 견해를 만들고 투표한다. 즉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엔지니어이며, 새로운 증거를 얻은 경우는 견해를 수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것이 현재의 견해에 반하는 것이라도 새로운 증거를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견해를 수정하는 자세야말로 과학, 공학이 성공한 기초이다. 아마도 민주주의의 기초도있을 것이다.

이 태도는 가짜 뉴스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증거를 날조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베트남 전쟁 당시 불리한 증거를 발표하지 않음으로써 가짜 뉴스를 만들어왔다. 정치적으로 둘 감각론 이른바 정치적 황색 언론의 역사는 적어도해도 19 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뉴스의 거짓과 모순을 찾으려고, 적어도 명확하게 지적 된 때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 겠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다. 가짜 뉴스는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올바른 정보를 얻으려는 성향이 널리 존재하여 충분히 해결 될 수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진짜 문제는 가짜 뉴스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올바른 뉴스를 찾아 노력을 포기했다고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 다. 공학적 마인드 세트, 입수 한 증거를 검토하고 신뢰할 수있는 것이라면 현재의 견해에 반하는 것이라도 새로운 증거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현재 정도 희석 된 시대는 없다 (나는 이렇게했다 자세가 항상 많은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든 기능 정도는 이러한 자세가 사회에 존재했다고 주장하고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공학적 마인드 세트는 그림자를 감추어 변호사의 마인드 세트가 전진 해왔다. 이 사고 방식은 먼저 대립하는 진영 중 하나 선택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증거를 무시하고 신용을 잃게 기각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반대로 자기 진영에 유리한되도록한다면 어떤 쓰레기이든 모세의 십계명을 새긴 석판 인 것처럼 麗々しく 제시한다. 물론 나는 현실의 변호사의 직무에 트집 싶은 것은 아니다. 내 친구는 변호사들이 대거 있고, 첫째는 내가 변호사와 결혼했다. 변호사의 접근은 격렬하게 대립하는 주장에서 진실을 발견하기위한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있다. 변호사의 마인드 세트가 유효한 것은 충분한 지식이 있고 신중하고 공정한 판사에 의해 쌍방의 주장이 검토되는 경우에 한정된다. 그러나 민주주의 일반 대해 말하면 그러한 법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는 민주주의가 기능한다면 그것은 법정이라고 할 수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공학적 마인드 세트가 필수적이다. 미국이든 영국이든 다른 민주주의 국가간에, 이러한 마인드 세트 세트가 일정 수준 이하로 쇠퇴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비용을 수반하는 손실이다.

그래서 현대의 정치적, 사회적 위기의 원인으로 기술을 비난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기술에 많은 결함, 약점이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자신의 견해는 잘못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증거를 검토해보고 싶다」라고 공학적 마인드 세트 이야말로 (적어도 이론에 는) 민주주의를 작동 마지막 터전으로 칭찬해야 미점의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냉전 종결 후 일반적인 적과 부를 수있는 존재를 잃은 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강력한 제국도 점차 쇠약 해지는 것은 역사의 추세지도 모른다. 세계의 복잡성, 이해의 어려움이 증가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른다. 부의 대부분을 독점하는 1 %의 부유층과 금융 사업이 기생적인 지배 체제에서 눈을 다른 곳으로 갈등을 짜낸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인이 어떻든 가짜 뉴스는 문제 자체가 아니다. 내가 보는 곳에 그 결과의 하나이며,이 뿌리 깊은 위기의 원인은 아니다.